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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21
  2. 2013.06.27
  3. 2012.06.28

 

 

 

서초구청 1층 서초프라자에 2014. 8. 12 ~ 8. 14 까지 심산 김창숙과 파리장서 전시를 눈여겨 하나하나 읽고 또 읽어 내려가니 8·15광복을 이루기까지 몸과 생을 다 바친 분들이 새삼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싶어지네요.

 

 

정신없이 살다보면 독립을 위해 애쓰고 이 나라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희생을 망각하고 삽니다. 사춘기 시절에는 혼자 큰 줄 알고 부모에게 대들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겠노라고 날뛰어 부모들이 당황하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 것 같아요.

625 한국 전쟁 이후 세대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합니다. 분단 불감증, 안전 불감증이 만연되어 있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8·15광복절을 맞이하여 한 번 더 상기하면 좋을 듯합니다.

 

 

심산 김창숙 선생(1879.7. 10 ~ 1962. 5. 10)은 경상북고 성주 출신의 유학자로 독립 운동가이며 교육자이십니다. 심산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의 폐기와 을사5적을 처형하라는 상소를 시작으로 애국계몽운동,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 등으로 평생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시며 우리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시고요.

 

 

올해 파리장서운동, 심산 김창숙 선생이 주도해 전국 유림 137명의 이름으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한지 95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파리장서에서 유림들은 ‘우리가 만국의 일원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라고 하여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인식과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침탈의 부당함과 잔학상을 폭로하며 독립을 호소하였습니다.

 

 

<심산유고>에서

‘우리가 값싼 흥분에 잠겨 있을 것만 아니라 한시라도 지체 말고 유림의 총 단결을 호소합시다. 그래서 손병의 등 독립선언에 이어 이번에는 밖으로 우리의 사정을 호소하는 국제운동을 펼침이 어떨까 하오……. 이번 파리강화회의에는 우리나라 대표를 파견하여 국제적인 여론을 일으켜 우리의 독립을 인정받게 해야겠소……. 우리가 국제적인 활동에 실패한다 하여도 우리가 외세를 알고 있다는 표시가 될뿐더러 발각되는 한에는 구속 소동이 뻔할 텐데 그러면 자연히 깊은 안일에 빠져있던 유림을 악몽으로부터 깨어서 대세를 바라볼 긴 안목을 키워줄 계기가 될 터인즉 보람찬 일이 아니겠는가’ 하니 해사 김정호가 책상을 치며 “좋다”고 일컫고.......

 

참으로 긴박함 간절함이 담겨 있는 유고입니다.

 

 

아직까지 기나긴 세월 흘렀지만 일본위안부 어르신들은 일본으로부터 사과 그 어떤 것도 받지 못한 채 못다핀 꽃송이로 남겨져 있고 이젠 시간도 없는데, 가슴 아프네요. 지금도 독도 관련 위안부건 모두 해외활동으로 인식이 확산되고 여론을 만들고 있지만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명량>영화가 1,400만명이 넘어 지금까지 최고의 흥행작으로 기록행진 중인데, 이것은 모든 국민이 공직자의 신뢰부족과 지도자에 대한 공경부재에서 진정한 리더 이순신 장군 모습을 열망이 아닐까 합니다.  

나라사랑과 나라지킴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 모여서 이루어짐을 다시한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전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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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김창숙기념관을 다녀오다.

 

 

 

 

서초구 반배동에는 서초구민체육센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길로 걸어가다보면 심산문화센터가 보입니다.
심산문화센터라고 하면 일반적인 문화프로그램을 강좌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북카페도 있고 문화프로그램도 진행을 하지만 그 곳에는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애쓰신 심산 김창숙 선생을 기리는 전시관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시설 독립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힘써왔듯이 당시 유림계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 선생님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기자기한 길을 지나 까치와 벌의 환영을 받고 심산문화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측에 동상이 있어요. 지팡이를 쉰 손과 입에서 신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팜플렛과 브로슈어가 있는데 책을 무료로 배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였습니다.

 

 

 

 

 

 

 

전시회의 시작은 선생님의 연보를 보여주고 있으면 그 이후로는 활동사항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선생님의 활동에 대해 안내해드릴께요.

 

 

 


1879년 경상북도 성주에서 태어나 집안 대대로 유학자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엄한 가정교육 아래 자랐고 동학혁명 이후 선생님 아버지는 농사일을 체험하여 농부의 어려움을 알라고 하시며 귀천이 없다고 하셨다네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 어머니의 꾸짓음에 뉘우치고 학문에 전념하였습니다.

 

 


일제의 침략시기 을사조약에 찬성한 을사오적을 처단하고 조약을 파기해야한다는 상소문을 올리셨고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3.1운동을 목격하고 유림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한탄하시며 유림대표 137인이 서명한 독립진정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망명하였고 상하이에서는 이를 번역하여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였습니다.

 

 

 

 

 

 

 

 

이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후원하였습니다. 그러던중 임시의정원 부의장으로 활동할 때, 잡혀 한국으로 압송되어 14년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었지만 간수에게 절하지 않고, 일본순사의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지병이 악화되어 집행정지로 출옥한 이후에도 창씨개명을 거절하며 항일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고문하는 자들에게>

조국광복을

도모한지 십여년

가정도 목숨도

돌보지 않았노라

 

 


뇌락한 나의 일생

백일하게 분명하거늘

고문을 야단스럽게

벌일 필요가 무엇이뇨

 

 

 

 

 

 

 

 

 


광복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 환영대회 부회장으로 환영대회를 주관하였고 통일정부수림을 노력하였으며 수립된 이후에는 이승만 정부의 권위주의를 비판하며 경고문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교육에 대한 뜻을 품으시어 전국 유림대회를 통해 성균관장에 선출되어 유학정신을 이념으로하는 성균관 대학을 설립하고 초대학장, 초대 총장을 지내셨습니다.

  

 

 

 

 

1962년 독립유공자 204명에게 건국공로 훈장을 수여하였는데, 이들 중 생존자는 20명이였고 김창숙 선생님 1등장인 중장 수여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그 분을 뜻을 받아 잊지 않기 위해 심산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가 마련되었고 50주기를 마련하여 전시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심산은 마음신과 뫼산을 써서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산처럼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아 호를 정하였다고 합니다.
우직한 신념과 마음으로 대한독립운동과 교육에 매진하신 심산 김창숙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심산문화센터 전시관에는 기록들이 잘 본존되어 있습니다.

  

 

 

 

 

글을 찬찬히 살피고 기록들을 보며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서초여우와 같은 마음인지 전시회 출구쪽에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글씨까지 포스티잍으로 감상평을 적어놓았더라구요. 감사와 고마움 그리고 존경의 마음을 담게 되었습니다.

 

  

 

심산 김창순 선생님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인데, 편안해진 생활 속에 과거를 과거로만 놓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담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6월의 심산 김창숙 선생의 전시관에서 서초VJ통신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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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에 떠나는 우리지역 역사 나들이! 심산기념관

 

보훈의 달 6월에 떠나는 심산 김창숙 선생과 함께하는 역사여행 속으로

 

그 어느 때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기게되는 보훈의 달 6월! 이럴 때는 조국을 위해 몸 바쳤던 순국선열의 얼을 기르는 것이 좋을 것같은데요 6월이 다가기전에 아이와 함께 이번 주말엔 심산기념관으로 손잡고 나서는 것은 어떨까요? :-)

 

이미지 출처 : 심산기념문화센터 홈페이지 캡처 (http://www.seocho.go.kr/)

 

심산 김창숙 선생에 대하여

 

심산 김창숙 선생은 단재 신채호, 만해 한용운과 더불어 삼절로 평가받는 분이예요. 독립운동 외에도 조국의 통일과 반독재투쟁, 민족사학 육성 등에 앞장선 유림 출신의 민족 운동가랍니다. 광복 이후에는 성균관대를 설립하여 초대 총장으로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하였다고합니다.

 

 사진 출처 : 심산기념관 홈페이지 캡처 (http://www.simsan815.org/)

 

반포동 심산기념문화센터 내 1층에 위치하고있는 심산기념관에는 심산 김창숙 선생의 동상과 선생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데요. 유물과 사진, 서적 등 약 200여점의 기념물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전시실로 들어가면 왼쪽에 김창숙 선생의 영정사진이 있고 그앞에는 연보와 선생의 유품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출생과 유년시절부터 주권수호운동과 독립운동, 독립군 기지 개척과 제 2차 유림단사건, 피체와 옥중투쟁,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 성균관대학까지 그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http://www.simsan62.org를 참조하세요 (관람문의 599-6551)

 

이미지 출처 : 심산기념문화센터 센터소개 찾아오시는길 (http://www.seocho.go.kr/site/ss/page.jsp?code=ssa040000000)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우리 현대사를 지켜오신 심산 선생님의 말과 글의 일부

 

심산 선생님의 시는 대부분 겨레와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에서 우러나온 것들입니다. 추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인 문체를 다룬 것들로, 이미 선생님의 시 하나하나는 우리 현대사의 단편이자 애국지사의 정신입니다.(중략)

 

사진 출처 : 심산기념관 홈페이지 사진으로보는심산 유도재건개혁운동 사진 (http://www.simsan815.org/)

성인이 글을 읽고도 성인이 세상을 구제한 뜻을 깨닫지 못하면

그는 가짜 선비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이따위 가짜 선비들을 제거해야만 비로소

치국평천하의 도를 논하는데에 참여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심산 자서전 중에서

-심산기념관 홈페이지 내 심산 김창숙 심산어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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