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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 풍류탄생' (7월 30일 ~ 10월 12일)

장소 :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치원의 정신사상을 조명하는 즈음에 왜? 일까를 생각해 보니 우리에게는 하나로 단결하는 국민적 통합, 정신적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해서는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저도 이 전시회를 보기 전에는 최치원 선생님은 서예에 능한 분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시회를 보며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인문학’과 ‘예술’이 결합된 전시로 최치원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인문학자와 예술가들이 직접 탐사하고 그가 남긴 시문을 서예. 현대미술, 서화, 설치미술, 사진, 영상, 가무등으로 재탄생 시킨 것이랍니다. 그럼, 최치원 선생님에 대해 알아볼까요?

올해 씨진핑이 내한 했을 때 최치원의 시를 한수 읊었다고 하지요. 당나라에서의 최치원의 입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당나라의 고서에도 최치원의 흔적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최치원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어 다시 조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부분입니다.

 

孤雲, 최치원(857~?)은,

신라 경주에서 육두품으로 태어나 12세에 당나라에 유학해 6년 만에 외국인 대상 과거시험이었던 빈공과에 최고 성적으로 급제했다고 합니다. 중국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리고 황제에게 특별하사품인 금띠를 받았으나 이방인인 그가 당나라에서 올라갈 수 있는 지위는 한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28세에 귀국길에 오른 그는 6두품 출신으로는 최고 관직인 '아찬(阿飡)'에 올랐지만 신라에서도 신분제의 한계로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조'라는 사회개혁안을 올렸으나 이도 무위에 그치자 좌절한 그는 속세를 떠났다고 합니다. 신발만 남긴 채 가야산의 신선(神仙)이 되고 말았다고 전해지지만 그의 마지막에 대해선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최치원(崔致溒)은 샤마니즘을 바탕으로 유교, 불교, 도교를 통합하여 처음으로 ‘풍류’에 대한 정의를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풍류’란 민간신앙인데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신화에서부터 신라의 화랑도에 영향을 끼친 그리고 현재 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무예뿐만 아니라 정신세계에 까지 영향을 끼친 한류의 원조격이 된 것입니다. 현재의 ‘k-culture'의 원조인 셈이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의 고유한 문화, 사상, 풍속 등은 사라지거나 왜곡이 됐다고 합니다. 학계에선 대표적으로 왜곡된 용어로 ‘풍류(風流)’를 꼽는다고 합니다.

 

▲ 풍류라고 쓰여진 글씨, 박원규작품

 

신라시대엔 화랑도 탄생이 이념적 뿌리가 됐고 조선의 선비정신으로 그 명맥이 일부 이어졌지만 일제 식민통치 기간에 풍류는 사상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멋지게 놀고 즐기는 행위로 왜곡돼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합니다. 결국“풍류? 그거 술 먹고 춤 추고 노는 거 아냐?” 그것은 잘못 왜곡 된 것이라는 거지요. 

화랑도는 “무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혹은 서로 도의를 연마하고 혹은 서로 가락을 즐기면서 산수를 찾아다니며 즐겼는데 멀어서 못간 곳이 없다. 이로 인하여 그 사람의 옳고 그름을 알게 되고 그 중에서 좋은 사람을 가려 뽑아 이를 조정에 추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화랑의 수양 방법은 노래와 춤을 즐기고, 산악을 숭배하던 고대의 제천 행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전시회에 참여 작가는 총 38명이며 작고 작가가 2명(백남준, 박생광)이랍니다.

국내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서예가,· 화가,· 사진작가 30여명이 최치원에 대한 오마주(hommage, 존경·경의)가 담긴 50여점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입니다. 최치원의 문장과 글씨가 새겨진 탁본·문필집·현판 등 40여점도 한데 모아졌습니다.

 

▲ 최치원의 친필

 

최치원글씨 탁본

   

전시장에 들어서자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서용선작가로 최치원의 삶을 두 갈래로 파악, 설치작품으로 풀어냈습니다. 나무판 두개에 머리를 풀어헤친 고운, 관모를 쓴 고운을 거칠고 단순하지만 힘 있는 선으로 장승처럼 표현했습니다. ‘출세’와 ‘입산’을 나타낸 것이랍니다.

 

출세

 

입산

 

이층과 삼층의 벽에 전시된 영당(신불을 모신당)현판을 탁본한 글씨들입니다.

 

 

‘해운대’라고 쓰여진 탁본은 최치원이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가던 중 이곳에 머물러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자신의 자인 해운(海雲)을 바위에 새겨 넣은 것이 해운대라 불리게 된 시조라고 합니다.

 

 

삼층의 입구에는 종이로 만든 주황색의 아주 큰 연꽃이 빛을 받아 화려합니다.

 

정종미작가의 연꽃

 

작고하신 백남준작가의 ‘자화상’이란 작품은 tv모니터에 불상과 사람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신기한 작품이었습니다.

 

백남준작가의 자화상

 

삼층의 전시실에는 최치원의 극락영생을 비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연꽃을 바닥에 깔고 용이 환생하는....

 

 

서예 작품들과 회화가 어울려 볼 것이 많았습니다.

 

 ▲ 황재형작가님의 회화작품들

 

홍지윤작가의 ‘접시꽃들판에 서서’는 화려한 색채가 눈을 끌었습니다. 실제 최치원은 접시꽃에 대한 시를 썼답니다.

 

 

설치미술가 최정화씨의 ‘신발 용됐네’ 작품을 보며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이내 해설을 듣곤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 고속터미널 상가에서 보았던 실내화가 작품이 되어 있었으니....... “최치원에게 신발은 중요한 상징물이었답니다. 그는 가야산 자락에서 신발만 남기고 종적이 묘연해졌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됐다고 믿었고 이 작품은 거기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랍니다. 가야산을 지키는 용이 됐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많은 작품을 전부 올릴 수 없어 몇 개의 작품을 설명없이 올립니다.

 

 

이 전시를 보며 우리민족은 풍류를 즐기는 낙천적이고 도(道)를 지키는 예의 바른 민족임에 다시 한번 긍지를 느껴 봅니다.

‘불교는 수신(修身)의 근본이고 유교는 치국(治國)의 근원’이라는 말씀을 되새겨 봄니다. 우리의 한류가 최치원선생이 원조였으며 그것은 풍류에서 나온 것임을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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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여행 리포터  강 아 영

 

평소에도 서예작품을 보고싶다 생각하다가 우연히 서예박물관에서 대한민국서예대전 수상작들이 전시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걸음에 달려가기 전에 ‘대한민국서예대전’이 어떤 대회인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조사해보니 대한민국서예대전은 이번이 26번째로 열리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전통있는 대회였습니다.

1986년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던 청곡 윤길중선생이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선생등과 전국서화예술인협회를 창립하여 1986년 제 1회 대한민국서예대전을 개최함으로써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제 6회 대회 때는 김영삼 대통령이 참관하셨다는 군요.

이 공모전은 서예를 한글, 한문, 문인호, 전각, 서각, 현대서예 부문으로 구분하여 대상 1점, 우수상, 특선, 입선으로 선정한다고 합니다. 서예대전은 서예가를 지망하는 많은 신인들의 서예적 성향과 능력을 평가하는 등용문으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군요. 

이번 제 26회 대한민국 서예대전은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열렸습니다.

 

 

  

 

도착해보니 1, 2, 3부로 나눠서 전시하는 데, 제가 간 날은 3부가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3부에는 외국인 입상자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고 있어서 더 흥미로웠습니다.

입구에서 표를 끊었는데 관람료가 천 원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작품이 너무 많아서인지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있는 팜플렛 같은 것을 주시지 않아 조금 아쉬웠습니다. 자신의 감을 믿기로 하고 천천히 감상을 시작해 보았습니다.

서예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저이지만, 글씨체가 유려하여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작품들이 있어 신기했습니다. 글씨를 쓰는 것조차 예술이 될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2, 3층에 걸쳐 수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작품마다 꼼꼼히 살펴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제대로 보려면 반나절 시간을 비워두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 전시때는 꼼꼼히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전시회를 나왔습니다.

 

 

 

  

 

 

보통 서양화나 팝아트 작품은 인기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전통이 깃든 이러한 전시전에는 연령층이 높은 어르신 소수만이 가시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관람료도 저렴하고 작품도 훌륭하니 모두 관심을 가지고 가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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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박물관, 14회 대한민국 문인화 대전 작품 감상후기

 

 

 

 

by 서초여행 김선하 리포터 

 

 

 

 

 

대한민국 문인화 대전이 1부,2부로 해서 열렸습니다.

 

대상; 서예미

최우수상; 강창순

우수상; 김윤아, 배미정

특별상; 김말순, 김옥경,김종욱, 이경주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특별상 작품은 1,2부 계속 전시 됩니다.)

 

 

 

 

문인화동양화의 일종으로 전문적인 화가가 아닌 사대부층이 여가로 그린 그림입니다. 문인화는 사물의 형상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기 보다는 작가의 내면 세계에 초점을 두어 자신의 심중을 표현하여 그렸으며 사인지화, 사대부화,문인지화 라고도 합니다. 처음에 문인화는 특정 양식을 갖지 않았으나 '원말 4대가'의 출현으로 수묵산수화 양식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이를 남종화, 남종문인화라고 하며 문인화의 특유 양식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수묵산수화 다음으로는 사군자가 유행하였습니다.

 

 

 

 

문인화는 그림에 시문을 덧붙여 시, 서예, 회화의 3요소를 갖춘 삼절(三絶)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인이며, 서예가이며,화가이기도 합니다. 너무 매력적이고 풍미가 느껴지시지요? 소재는 매,난,국,죽( 梅,蘭,菊,竹 )의 사군자와 자유로운 소재를 바탕으로 저마다의 독창적인 양식으로 시문과 글씨의 아름다움을 갖춘 그림이라 하겠습니다. 문인화는 대부분 먹을 사용하여 간략하게 그린 후에 엷은 채색을 하는 기법을 사용 합니다.그래서 담백한 느낌입니다.

 

 

조선시대 문인들은 인생에 대한 철학과 자연에 대한 섭리를 깨달아 인격과 교양이 갖추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그림을 통해 그 격조가 우러 나온다고 보았답니다. 그러니 그 그림속에는 얼마나 깊이가 있었을까요?

 


 

전시실에는 입선이상의 작품들만 전시되었습니다.특선 60명,입선 193명, 작품을 일일이 소개해 드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몇개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도 문외한이어서 작품을 평하기 어렵지만 대상을 수상한, 목련(木漣)을 보는 순간, 거침없는 선의 대담함과 붓의 시원한 터치에 매료 당했습니다. 채색이 없이 수묵의 강약으로 명암을 주었는데 담백하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봄비에 젖은 목련꽃이 산아래 밝게 피었네 이천십삼년 이른 봄날원지 서예미 그리고 쓰다' 글씨체 또한 시적 흘림이었습니다.

 

 

 

 

 

 

 

이어서 전시실의 그림을 몇개 올려 보겠습니다. 감상해 보세요~

 

 

 

 

 

 

 

 

다음은 최우수상을 수상 하신 작품을 소개 하겠습니다. 소나무 위에 앉은 독수리 그림이었는데, 기백이 느껴지는 소나무와 독수리의 힘있는에너지가 느껴지는 남성적인 그림이었습니다 솔잎의 채색과 나무가지의 채색이 생동감 있었고 독수리의 특징을 잘 살리신 작품 같았습니다.

 

 

 

 

 

이 작품외에도 매화꽃, 표주박, 연꽃,포도나무 ,석류 등등 다양한 소재가 작가의 멋진 솜씨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훌륭한 작품들을 보면서 나이가 들면 꼭 배워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너무 멋져 보였습니다. 한폭의 시를 보는 듯 하고.....

 

 

마지막으로 문인화에 대해 끝맺음을 하겠습니다. 조선시대의 문인화가로는 조선전기에는 강희안이 대표적입니다. 강희안은 많은 그림을 남겼지만 화가라는것을 꺼려하여 자신의 그림을 자신들에게 소각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유행하였던 것은 17세이 이후부터 입니다. 강세황, 이인상, 심사정이 남종화의 대표 인물이고, 문인화풍을 절정에 올린 사람은 김정희 입니다.

 

 

대한문인화대전의 그림을 이해 하려면 문인화의 역사를 알아야 할 것 같아 조사한 것과 함께 올립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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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gnrism BlogIcon 황지나 2013.06.27 21:41 address edit & del reply

    서예 박물관은 어디있나요? 예술의 전당에 있는건가요?

 

 예술의 전당의 역사 속으로~

 

 

by 서초여행 강아영 리포터

 

 

 

날씨도 좋고 바람도 좋은 날~ 문화생활 좀 즐길 겸 예술의 전당에 놀러갔습니다. 제가 간 날이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많고 모두들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고요~ 어떤 공연을 하나 팸플릿이 모여 있는 쪽으로 갔는데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예술의 전당 역사를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이 있답니다. 음악당부터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까지 서서히 생겨난 예술의 전당 건물들! 오늘은 저와 함께 예술의 전당 역사 속으로 가보실까요?

 

 


예술의 전당에서 처음 생긴 공연 공간은 1988년 생긴 음악당입니다. 당시 음악당 건물은 국내 최초의 음악 전용 공간이었다고 해요. 음악당 건물은 현재 대규모 콘서트를 위한 콘서트홀, 실내악 연주홀인 IBK챔버홀, 실내악 연주와 실험적 음악을 위한 리사이틀홀 등 세 개의 음악 전용홀을 갖추고 있습니다. 개관 후 국내외 유명 오케스트라와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공연하는 한편, ‘교향악 축제’, ‘청소년 음악제’, ‘실내악 축제’ 등 자체적으로 기획한 음악제도 많이 공연했다고 해요. 1988년에는 서울서예박물관도 개관했습니다.

 

 

 

 

근대화 과정 속에서 미술의 한 분야 정도로 축소된 서예는 박물관이 생기면서 부활의 거점을 마련하게 됐는데요. 서예박물관은 한국 서예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신라의 김생부터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에 이르기까지 30회에 걸친 ‘한국 서예사 특별전’ 시리즈를 통해 잊혀진 한국 서예시를 복원했다고 합니다. 1990년에는 한가람 미술관이 탄생했어요. 조형예술을 수용하는 종합미술관인 한가람 미술관은 ‘한국미술 상황전’, ‘젊은 시각-내일에의 제안전’, ‘무당개구리의 울음전’ 등 다양한 기획전을 통해 역동적으로 변하는 오늘의 미술을 조명했습니다.

 

 

 


그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는 1993년에 생겼어요. 오페라, 발레, 무용 등 공연의 메카인 오페라 하우스는 오페라극장, CJ토월극장, 자유소극장 등 3개의 공연장을 갖추고 있답니다. 오페라극장은 4개층 2300석 규모, CJ토월극장은 1004석의 규모라고 해요. 정말 어마어마하죠? 마지막으로 막내인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은 1999년에 탄생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디자인 전문 미술관으로 개관기념전 ‘일사 속의 디자인 발견’을 시작으로 생활 속에 녹아드는 새로운 감각의 디자인을 선보였다고 해요. 어때요? 우리가 그냥 지나치던 예술의 극장의 역사를 들여다보니 정말 새롭지 않으세요? 저도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답니다. 시간 나시는 분들은 한 번 들르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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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현이 2013.06.04 12:42 address edit & del reply

    세월 속에 묻어난 아름다움은 그냥 얻어지는 것 아닌 것 맞네요... 잘 봤어요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gnrism BlogIcon 황지나 2013.06.08 15:22 address edit & del reply

    흥미로운 전시네요..저도 그 역사를 함께 보아와서 더 흥미로울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