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1.09

 

 

 

 

 

"서초의 일곱 마을 이야기"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도시의 역사만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들도 함께 공존하고 있죠. 11월21일~12월30일까지 40일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2012 서울사진축제’는 개인의 역사가 서울의 역사와 공존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전시회였습니다. 당연히 이 전시회에는 서초구의 역사도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바로 이 서초구 전시 부분을 다뤄볼까 합니다.

 

 

 서초구는 옛날 서리풀이 무성했다는 데서 그 지명이 유래하며, 과거에는 경기도 광주와 과천에 해당했으나 1963년 서울시의 행정 구역 확대에 따라 서울시 강남 지역으로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서초동, 잠원동, 반포동, 양재동, 우면동, 내곡동, 염곡동, 원지동, 신원동이 속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우면산과 청계산, 관악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한강이 흐르는 살기 좋은 곳이죠. 행정구역과 주소는 바뀌었지만 오랜 시간 서초구에서 삶터를 일궈 온 주민들이 옛 사진을 펼쳐놓고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변화의 속도에 묻힌 마을의 역사가 켜켜이 담겨 있었답니다.

 

 

 

 우면동에 사는 안완 씨(1952년생)는 시흥군 신동면 우면리(현 우면동)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우면리가 처음 서울에 편입될 때는 영등포였으며, 성동구, 강남구로 바뀌어 나중에는 서초구로 분구되었다고 해요. 양재리 출신 안완 씨의 할아버지 안호 씨는 경주 이씨 이복순 씨와 결혼하면서 우면리(처갓집)으로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4대가 우면동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우면리는 경주 이씨 집성촌이었는데요. ‘우면’이라는 동네 이름은 소 우자에 잠잘 면자를 써서 ‘소가 잠자는 동네’라는 뜻인 것 다들 아시죠? 안완 씨가 살고 있는 우면동 2번지는 소가 누워서 잠자는 형상 중에 배 아래쪽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 아랫덩어리 집에서 절구에 도토리를 빻고 시루에 누르는 장면. 동생 댁이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사진사를 데려다 촬영했다. 1977년/ 아랫덩어리 집 마당에서 동생 댁과 조카와 함께 토란줄기를 까는 모습. 오른쪽이 박달분 씨. 1974년)

 

 현재 서초1동에 거주하고 있는 박달분 씨(·1920년생)는 말죽거리에서 태어나 18살에 남편 진백용 씨를 만나 아랫덩어리(명달리)로 시집을 갔습니다. 당시 명달리는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에 속했고 현재는 서초구 지역에 해당하는데요. 말죽거리는 서초구 양재동 양재역 부근에 있던 마을로, 제주도에서 보낸 말을 한양으로 보내기 전에 이곳에서 손질하고 말죽을 쑤어 먹였기 때문에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박달분 씨는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고, 논농사를 짓다가 개발 전까지 방앗간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현재 아흔을 넘긴 그녀는 서초동에서 막내아들과 함께 살고 있답니다.

 

 

 

(언남초등학교 제16회 졸업기념 사진. 맨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조은호 씨. 1964년)

 

 

 반포동에 살고 있는 조은호 씨(1951년생)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염곡리(현 염곡동)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염곡리의 대부분 집은 돌담집이었으며, 그가 살던 집의 안채는 초가집, 바깥채는 양철집이었다고 해요. 현재는 같은 구조로 기와만 고쳐서 큰형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반원 형태의 염곡리 마을에서는 구룡산, 앞산, 안산, 청계산, 관악산을 바라볼 수 있었고, 옻이 오른 사람이 마시면 낫는다는 유명한 옻우물도 있었다네요. 주변 양재천에는 댐과 수문이 있었고, 양재다리에서 사람들이 많이 빠져 죽었다고 합니다. 겨울마다 꽁꽁 얼어붙은 양재천은 동네 스케이트장으로 변해 아이들이 북적였다고 해요. 염곡리에는 웃교회와 아랫교회 두 개의 교회가 있었는데 웃교회는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1970년대 염곡리에는 100호가 살았는데 그중 10호가 전주 이 씨 집안이었고, 나머지는 창녕 조 씨의 집안이었다네요. 그래서 조은호 씨의 집안 잔치는 곧 마을 잔치가 되었다고 합니다.

 

 

 

 

( 능안마을 전경. 왼쪽 집이 김정학 씨 자택이다. 박정희 대통령 순시를 계기로 동에서 융자를 지원받아 오른쪽 마찻길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주변 초가집은 기와집으로 바뀌었다. 1970년대 말)

 

 현재 내곡동에 거주하고 있는 김정학 씨(1932년생)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학리(현 학동)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한국전행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의 고향이자 경주 김 씨 집성촌이었던 능안마을(현 내곡동)으로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논밭이었던 땅을 사서 집을 세우고 밭농사를 하면서 살았는데, 수입이 변변치 않아 양계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땅을 담보로 시의 지원을 받아 비닐하우스 두 동을 짓고 청정채소 재배를 함께 했다고 해요. 하지만 판로 개척의 어려움으로 실패하면서 570평짜리 땅을 다 날려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4년 전 내곡동 샘마을로 다시 이사를 와 살고 있다고 해요. 샘마을은 1979년 창경원 주변 천막촌을 철거하면서 이주민들에게 용마름(일명 딱지, 용마름 1개에 집 1채)을 주고 이주해 살도록 하면서 만들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현재 여든을 넘긴 김정학 씨는 4남매를 출가시키고 부인 신명석 씨와 함께 밭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네요.

 

 모든 사연을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서초구민들의 소박하지만 역사가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재밌지 않았나요? 저는 서초구의 옛 정경과 그 속에서 살았던 옛 주민들의 사진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비록 전시는 끝났지만 이 포스팅을 보면서 옛 추억을 되새겨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

 

 

 

 

 

 

 

 

 

 

 

 

Trackback 0 And Comment 1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gnrism BlogIcon 황지나 2013.03.30 21:04 address edit & del reply

    제가 사는 곳의 역사를 아는건 재미있는거 같아요....동 이름의 어원 아는것도 그렇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