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幸의 바깥여행/전국/세계여행'에 해당되는 글 3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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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4.08.22

 

  1994년 10월28일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한양 즉 지금의 서울로 수도를 옮긴지 600년이 된 기념일이네요.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에 새롭게 조명되는 기회가 되어 시대의 아이콘 등 추억을 떠오르게 했어요.

 

 

 

 

역사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응답하라 1994 그후 20년’ 전시를 위해 오랜만에 이곳을 찾으니, ‘어제가 없이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이는 미래도 없겠다’는 생각이듭니다. 박물관 앞에 도시환경을 좀 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홍제육교, 홍제고가, 아현고가 등 철거하고 주춧돌 등을 이곳에 옮겨놓아 현대사의 좋은 자료가 되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또한 철거 광화문 주요부재도 볼 수 있었는데, 2007년 7월 해체된 철근콘크리트 일부 중 ‘여장(女墻)’이라 하는 부분에 관심이 가네요. 성벽위에서 전투 시 공격과 수비를 위하여 규칙적으로 총구 높낮이 변화를 둔 낮은 담장을 여장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특별히 벽돌위에 8괘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어요. 8괘라 하면 하늘, 땅, 불, 물, 못, 우레, 바람, 산 자연을 칭하고 우주자연의 이치가 담아 있는 것인데, 선조들이 이 이치에 따라 자연에 순응하고 방어하고 보호하려는 것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1986년부터 서울600년 사업의 준비단계에 들어가 1994년 4개 분야 총 228개 사업을 본격화하였다합니다. 시민모두가 동참할 수 있도록 서울의 전 지역을 무대로 진행하고, 민간 참여를 적극 유도하여 ‘남산골 제 모습 가꾸기’, ‘서울1000년 타임캡슐’ 등 주요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1994년 중 가장 안타까운 사건은 10월21일 성수대교붕괴사고가 있었지요. 이 사건으로 사업이 축소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 버렸으나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여 서울 시민의 역사적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지금은 직업, 가정, 결혼을 포기한 ‘3포세대’라 칭하여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면 1994년도는 ‘X세대’로 기성세대의 틀을 벗어나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하며 자유분방한 젊은이를 일컫는 신조어였어요. 새로운 소비문화의 주역으로 유행을 선도하였고, 종로 피카디리극장, 신촌의 독수리다방, 압구정의 로데오거리, 강남의 뉴욕제과 앞이 대표적이었어요. 그중에서 저 같은 경우, 친구들과 ‘강남역 뉴욕제과 앞에서 보자’라는 약속했던 많이 했던 추억의 뉴욕제과를 보니 감회가 남다르네요. 이젠 사라져 볼 수 없어 기억 속에만 존재하지만요.

 

 

 

 

올해 물수능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이슈가 되었고, 사교육 전체시장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하는 영어과목이 이젠 줄세우기식 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진행한다고 하는 수능의 첫 세대 또한 94학번이었어요.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는 1945년 대학별 고사제 이후 수정과 보안을 거듭하다가 1994년 학년도에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성적, 그리고 대학본고사의 3개구조로 이루어졌거든요. 94학번은 대학입학의 ‘수능1세대’인 동시에 대학졸업의 ‘IMF세대’로서 ‘비운의 구사(九死)‘라는 타이틀이 붙어졌었어요.

 

 

 

30년 전, 20년 전에도 공부했던 수학정석교재, 그리고 성문종합영어를 지금도 학원가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곳 박물관에도 전시 되어 있어, 묘한 생각이 많이 들면서 찹찹해 지네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미래의 역사가 될 주역으로서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각 분야의 자랑스러운 발자취가 되어가길 꿈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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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은 서울서 가까워서 그런지 지나칠 때마다 언젠가는 가겠지 하고 그러다가 이제서야 가게 됐습니다.

사적 제56호인 행주산성엔 의외로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됐지만 한때는 치열한 전쟁의 격전지였다는 곳이라는 것은 입구초입에 서있는 권율장군 동상이 말해 주었습니다.

권율 장군의 사당이 모셔져 있는 '충장사

‘쪽으로는 울창한 나무들이 있어 호젓하게 걸어다니기 좋았습니다. 1970년에 건립된 충장사는 매년 음력 2월이면 권율 도원수의 무훈을 기리는 행주대첩제 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곳은 고즈녁한 길로 둘이 손잡고 걷기 좋은 오솔길이라 그런지 유난히 연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은 한강을 뒤로 하고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 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돌로 쌓은 성이 아닌 토성으로 성벽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행주산성 둘레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 듯 따라갔습니다.

행주산성은 삼국시대 때 신라 문무왕 시절에 쌓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역사 깊은 산성입니다.

우리에게는 권율장군과 행주대첩의 격전지로 잘 알려진 행주산성인데요.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대파한 싸움으로 유명하구요.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손에 꼽힐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싸움이 벌어진 행주산성인데요.

 

 

 

 

행주대첩이 벌어졌던 임진왜란 때에는 목책으로 임시로 방어선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음력 2월, 관군, 의병, 승병, 부녀자로 구성된 2천300여 명이 권율 장군의 지휘 아래 10배 넘는 왜적 3만여 명을 물리친 행주대첩의 역사적인 무대였습니다.

행주대첩은 당시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서, 석전으로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고, 때문에 ‘행주치마’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산성의 위치가 가파르진 않지만 주변보다 높은 곳이라 방어에 유리한 위치라는 것을 알겠더라구요. 제일 맨 꼭대기 기념탑에 사방팔방으로 탁 트여 경관이 얼마나 좋은지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특히 주변 한강와 고양시쪽이 한눈에 보이여 당시 전쟁을 하였을 시 방어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전쟁의 흔적보다는 주변의 좋은 공원으로 자리 잡고 있어 신선한 공기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됐습니다. 특히 가을 단풍이 지는 울창한 나무들이 뿜어내며 걷는 길은 정상에 오르면 전망이 눈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매년 새해의 첫날이 되면 이곳에서 해맞이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하는데요. 이제 한달 남은 2014년이 지나고 새해 2015년에는 행주산성에서 해맞이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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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김장축제를 참가하려고 새벽녘에 서울을 출발해 일찍 도착, 시간이 여유가 있어 가던 길에 전봉준 장군 단소 안내판에 이끌려 찾아갔습니다.

요즘은 시골도 다 현대화 되어 옛정취가 사라졌음에도 이곳 전라북도는 아직도 시골 정취가 남아 있어서 마치 고향에 온 듯 했습니다.

고향이 이쪽 중앙쪽이다 보니 시골에 가는 것은 일부러 여행을 가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라 오랜만에 한적한 시골 논길을 달리며 느껴지는 냄새와 고요함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먼길을 달려온 피로감이 씻길 정도로 덜 오염된 시골 길을 얼마나 꼬불꼬불 달렸는지 멀리 비석하나가 보였습니다

 

 

 

 

120년 전에 갑오경장과 동학농민혁명이 있었는데 다들 사느라고 바쁜건지 싶어 우리의 역사현장을 한번 이왕 온 김에 돌아보게 된 것인데요.

전봉준 장군 단소는 전봉준 장군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아 허묘를 조성한 것이고 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녹두장군 전봉준으로 먼저 “새야~새야~ 파랑새야~~~” 노래로 익숙했던 것이 문득 생각났는데요. 역시 비에도 전봉준 장군의 일러스트레이션과 노래 가사가 적혀 있었습니다.

 

 

 

 

 

전봉준 장군은 악덕지주 조병갑의 횡폐에 저항하고 동학농민운동에 앞장섰던 분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좀더 사전에 나와있는 것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조선 고종 31년(1894)에 동학교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혁명이다.교조신원운동의 묵살,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불법 착취와 동학교도 탄압에 대한 불만이 도화선이 된 혁명은 조선 봉건사회의 억압적인 구조에 대한 농민운동으로 확대되어 전라도·충청도 일대의 농민이 참가하였으나 청·일 양군의 진주(進駐)와 더불어 실패했다. 이 운동의 결과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우리나라에는 일본 세력이 점점 더 깊이 침투하게 되었다>는 것인데요.

 

 

 

 

 

전봉준 장군은 1855년 전라남도 고부군에서 전창혁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땐 몸집이 작아 녹두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전창혁이 군수 조병갑의 횡포로 농민들에게 돈을 다 뜯어가서 항의하러 갔다가 곤장에 맞아 사망하자,이에 조병갑에게 찾아가 세금을 낮춰달라고 했지만 말을 들을 턱이 없었고 결국 1894년 1월 농민을 이끌고 봉기합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결정지은 역사의 일대 사건이자 봉건질서 타파와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는 항일 독립정신으로까지 길러주었다고 하는데요.

 

 

 

 

누군가 묘소앞에 초콜릿과 귤을 두고 갈 정도로 학생들의 종이학 통도 있었구요. 공적을 기리는 많은 비석들이 얾음 들판 한가운데 있어 머리를 조아리며 지난 역사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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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 짱, 우히메···

이는 일본에 진출한 한국 연예인들의 애칭입니다. 요즘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데, 서초구도 일본 스기나미구(杉並区)와 자매결연을 맺었으며 일본과 따로 떼어서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죠. 최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4’가 출간되었고 단풍이 절정인 이 가을, 일본 속 한국을 찾아보았습니다.

 

 

▲ 긴테츠 나라(奈良)역의 한글 이정표

 

 

‘간무(桓武)천황(781~806 재위)의 생모는 백제 무녕왕의 후손이다.(속일본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이주민을 도래인(渡來人)이라고 부릅니다. 가야인은 오사카로, 백제인은 나라로, 신라인과 고구려인은 교토로 이동했습니다. 오사카(大阪)의 옛날 명칭은 백제군(百濟郡)이며, 나라(奈良)는 ‘국가’를 말하는 이두식 한자어의 표현입니다.

 

 

▲ 긴테츠 나라(奈良)역의 백제 도래인 교키(行基, 668~749)스님

 

 

교토(京都)로 천도하기 전까지 84년(710년~794년) 동안 나라(奈良)는 수도의 역할을 하며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 곳에는 나라시대를 열면서 처음 지은 사찰 고후쿠지(興福寺)를 비롯해서 교키(行基)스님이 설립 4대 주역인 절 도다이지(東大寺),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신사인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 사슴들의 천국 나라공원, 나라국립박물관, 나라마치(奈良町) 등 여러 볼거리들이 있습니다.

 

 

▲ 나라(奈良)에 물든 단풍과 가을 하늘

 

 

고후쿠지(興福寺)는 명문 호족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절입니다. 메이지 유신 때 불교배척운동으로 절의 재산은 모두 몰수당하고 목조 불상들은 땔감으로 사용되었답니다. 정부는 절터를 나라공원으로 조성하였으나 1902년부터 오중탑 수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경내를 보수 중입니다.

 

 

▲  세계유산 고도나라(古都奈良)의 문화재 ‘고후쿠지(興福寺)’

 

 

배불훼석(排佛毀釈) 정책으로 어떤 상인이 고후쿠지(興福寺)의 오중탑을 25엔에 사서 불태워 쇠붙이만 사용하려고 했는데, 화재를 염려한 마을 사람들이 반대해서 현재 국보로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  메이지 유신 때 25엔에 팔릴 뻔한 고후쿠지(興福寺)의 국보 오중탑

 

 

옛날 천황의 총애를 받던 궁녀 우네메(采女)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황의 사랑이 식어가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버드나무에 옷을 걸어 놓은 후 연못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를 안 천황은 연못 옆에 신사를 지어 그녀의 넋을 달래 주었는데 특이하게도 그 우네메 신사(采女神社)는 도리이 문을 등지고 있답니다. 매년 음력 8월 15일 우네메 마쯔리(采女祭)를 열고, 아름다운 달이 뜨면 사루사와노이케(猿澤の池)에 배를 띄웁니다.

 

 

▲  고후쿠지(興福寺)의 국보 오중탑이 비치는 사루사와노이케(猿澤の池)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신이 흰 사슴을 타고 이 곳 나라(奈良)에 나타났기 때문에 사슴을 신성시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합니다. 나라공원의 사슴들은 야생동물이므로 물기, 때리기, 들이받기, 돌진하기에 주의하라는 안내표지가 있었습니다. 공원 내에 일본 3대 박물관(도쿄, 교토, 나라) 중 하나인 나라국립박물관 본관은 마침 2014. 9.~2016. 3. 공사 중이네요.

 

 

▲  사슴들의 물기, 때리기, 들이받기, 돌진하기에 주의하라는 안내표지

 

 

맛있게 보이는 사슴 과자(150엔)를 들고 있자, 냄새를 맡은 사슴들이 하나 둘씩 다가왔습니다. 평일에는 순식간에 3개의 과자 묶음을 해치웠는데 주말에 다시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먹이를 주기 때문인지 잘 먹지 않아 대신 비둘기들의 식사가 되었습니다.

 

 

▲  주말에 배가 불러 점잖아진 나라공원의 사슴들

 

 

 사루사와노이케(猿澤の池) 오른쪽으로 이어진 나라마치(奈良町)는 일본식 전통 목재 가옥들을 식당이나 상점, 게스트 하우스로 바꾸어 사람들이 일본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했습니다.

 

 

▲  식당이 된 2층의 일본식 전통 목재 가옥

 

 

오사카 난바(難波)에 가면 누구나 한번쯤은 글리코 런닝맨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제과회사인 글리코는 ‘300m 뛰는데 필요한 칼로리를 가진 캐러멜’을 홍보하기 위해 이 런닝맨을 광고에 넣었다고 합니다.

 

 

▲  오사카의 명물 글리코 런닝맨

 

 

 

▲  신사이바시스지(新齊橋筋) 상점가에서 만난 지우히메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밤, 숙소와 가까운 HEP FIVE(7층)에서 관람차를 탔습니다. 지상 최대 106m 높이에서 오사카가 한눈에 보이는 야경은 아주 멋졌는데, 날씨가 좋으면 오사카성이나 아카시해협대교도 볼 수 있답니다.

- 장 소 : 오사카 우메다(梅田) HEP FIVE (7층)

- 요 금 : 500엔 (5세 이하 무료)

- 운영시간 : 11시~22시45분(최종 탑승시각)

 

 

▲  지상 최대 106m 높이에서 오사카 야경을 바라볼 수 있는 빨간 관람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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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의 묘미는 뭘까요?

좋은 풍경, 맛있는 음식, 구경하기 좋은 날씨 등등 많이 있을 듯한데,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맘 맞는 사람이 아닌가 해요. 같이 여행을 간 사람들이 맘이 맞지 않는다면 앞에 얘기한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이번 여행은 운 좋게도 맘의 합을 많게는 4년 이상을 맞춘 분들과(작은 도서관 봉사자분들) 함께 했어요. 그래도 아직은 가족 여행 외에는 어려운 여건 때문에 1년이라는 기간을 준비했어요. 그 동안 비용도 저축하고 가족들에게 홍보도 하고...(난 절대로 꼭 간다고... 매번 신랑과 아이들에게 세뇌를 시켰어요.) 일정은 모두 한 마음으로, 여행이면 좋다 이기에 별 문제 없이 가깝고, 음식과 잠자리가 편한 일본 큐슈로 정했어요.  

가족과 떨어지는 어려운 여행이라서 그랬는지, 여행 전날까지 태풍19호 덕분에 비행기가 뜰까를 걱정해야 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큐슈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어요. 물론, 착륙 직전 비행기가 기류에 요동을 쳐서 정말로 간이 콩알 만해지기도 했지만요ㅠ~ 

그래도 여행으로 남의 나라에 오니, 비바람이 불어도 기분이 꿀꿀하지는 않았어요. 비바람을 맞아도 여고생이 된 듯 꺄르르 웃음이 저절로...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첫 번째 일정은 점심 먹기. 해물, 돼지고기, 야채가 들어간 우동인 돈멘, 주먹밥 오니기니와 노란 단무지 두 쪽^^

날씨가 스산해서인지 따뜻한 국물이 좋았어요~

 

돈멘과 오니기니가 맛있었던 우동집

 

점심을 먹고는 사가현 이마리시 오카와치야마 도자기 마을과 3,000년이나 된 삼나무가 있는 다케오 신사에 갔어요. 도자기 마을에서는 비바람이 어찌나 불 던지, 우산이 뒤집혀서 다니기가 너무 어려웠는데, 들어가는 도자기 샵 들에 전시되어 있는 도자기 들이 얼마나 멋지던지~ 천천히 돌아볼 시간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다케오 신사는 작지만 아담하고, 뒤쪽 숲이 대나무가 있어서 운치가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았어요. 또, 삼천년이나 됐다는 삼나무를 보면서 아~ 이런 자연이 있어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와 같은 작품이 나온게 아닌가 하는 제 나름의 생각을 해 보았어요.

  

도자기 마을 입구에 도자기 다리와 도자기로 만든 일본 인형

 

관광은 여기까지 하고, 일본의 3대 미인 온천인 우레시노 마을로~ 이동. 와타나벳소 온천 호텔에서 유타카를 입고, 가이세키 저녁을 먹고, 대욕장에서 온천욕을 하고, 다다미방에서 첫날을 마무리~~~

 

가이세키 요리와 물이 흐르는 우레시노 마을의 모습

 

둘째 날 6시 모닝콜을 듣고 깨어서 어쩔까 하다가 어제 대욕장에서 못한 노천탕이 아쉬워서 다시 대욕장을 찾았어요.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지 않을까 했는데, 좋은 물이 아쉬워서 인지 같은 패키지 여행을 오신 분들도 꽤 대욕장에 오셨어요.

간단히 목욕을 하고, 다양한 음식이 있는 뷔페식당으로 고고. 매일 이렇게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연발하면서 맛난 아침을 먹고, 유후인과 벳부 가마도 지옥을 보기 위해서 출발했어요.

유후인은 일본 장인들이 종이, 유리등으로 만든 공예품과 생활품을 직접 전시 판매를 하고, 또 바닥에서 따뜻한 물과 차가운 물이 만나서 호수에 안개를 만드는 긴린코 호수를 볼 수 있었어요. 너무 웅장하거나 거대해서 멋지다기 보다는 일본인의 특성처럼 아기자지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어요.

유후인이 일본인의 특성을 보여 주었다면, 벳부의 가마도 지옥은 일본 열도의 특성을 보여 주는 곳이었어요. 지하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에 의해서 온천수가 90도 이상이었어요. 주변에서 보고만 있어도 물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어요. 가마도 지옥의 물은 뜨거워서 가까이 갈 수 없었지만, 족욕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이 있어서, 오순도순 앉아서 족욕을 하며, 온천수로 익힌 달걀과 병속에 구슬이 들어간 구슬 사이다를 재미있게 먹었어요.

 

유후인에서 본 천으로 만든 지갑 가게와 가마도 지옥에서 여유롭게 족욕을 즐기는 모습~

 

둘째 날 일정의 마지막인 캐널 쇼핑 센터까지~ 패키지가 아니면, 어려운 날이었네요.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세심하게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마지막 셋째 날에는 숙소인 힐튼 호텔에서 푸짐한 아침을 즐기고, 부산에서 페리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선착장이 있는 하카타 포트 타워를 관람했어요. 그리고 다음으로는 일본인들이 시험 합격, 사업 번창 등을 기원하는 학문의 신 스가와라 야미야지키를 모신 다자이후텐만궁이라는 사원을 갔어요.

같이한 일행 중에 올해 고3인 학부형이 가이드에게 부적 사는 것을 물어보니, 가이드가 일본 신은 한국말 몰라서 부적을 사도 소용없다고 해서 웃었네요^^

 

다자이후텐만궁과 합격과 번창을 기원하는 모습

 

2박3일이 짧을 수도 있지만, 알차게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있어서 좋았어요. 일상으로 돌아와서 회상을 하면,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요. 엄마로서의 역할이 가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나만을 위한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어쩌면 사치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가족이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대화를 통해서 엄마가 아닌 나로서의 여행을 한번 정도 하면서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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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공간에서 마을과 마을, 사람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오랜 시간 속 이야기를 간직하며 묵묵히 우리의 곁에 있습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자연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유명한 둘레길에 강원도 철원의 한여울길, 지리산 둘레길, 경북 안동의 퇴계이황 오솔길, 춘천 봄내길, 제주 올레길, 남한산성 둘레길, 담양 수목길, 북한산 둘레길,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태안 둘레길, 강릉 바우길, 영주 소백산 자락길등 걷고 싶은 길이 전국 곳곳에 즐비한데 연휴를 맞이해 가족들과 함께 지난 10월 4일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을 다녀왔습니다.

 

 

‘금강소나무 숲길‘ 은 예약제로 이루어져 하루 80명이라는 탐방 허용 (선착순) 국내 최초 예약탐방 가이드제로 이루어져 진행되고 있으며 중간에 탈출로가 없습니다.

숲 해설가를 동반하지 않으면 탐방을 할 수 없고 무단으로 출입하거나 예약없이 탐방시 퇴장조치 되며 매주 화요일은 숲길 휴식의 날이랍니다.

 

 

총 3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리가족은 그중 16.3km 거리 총 왕복 7시간 소요되는 제3구간을 트레킹하고 왔지요. 소광2리 금강송 펜션을 출발 땅에 물기가 많다하여 이름지어진 ‘저진터재’까지의 코스가 가장 힘든 코스였죠.

“신기하게도 항상 이 시간에 유난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요. 길 걷느라 수고했다고 사람들을 토닥이듯이 말이에요.” 동행한 숲해설가는 말씀하십니다.

옛날 보부상들이 강원도 바닷가에서 잡아 온 고등어와 소금을 한양으로 팔러 갈 때 이 길을 지났는데 산새가 있고 도둑들도 많고 짐승들이 자주 출몰해 중간 중간 쉬어갔답니다.

시일이 오래 걸리다 보니 싱싱하던 고등어가 중간 중간 상할까바 소금을 뿌려 보존하다보니 한양에 도착하기전에 간고등어가 되었다네요.

원래 안동의 간고등어는 그때 동해 바닷가에서 가져온 싱싱한 고등어가 중간에 보부상들이 금강소나무숲길이 조성된 지금의 산을 넘으면서 소금을 뿌려 안동에 와서 팔면서 지금의 안동의 특산물이 되지 않았나 추측한답니다.

 

 

조령을 지나서 한참을 내려오면 제법 큰 물줄기가 나타나는데 대광천이 흐르고 있지요. 이곳을 따라 아래쪽으로 걷다보면 숲 속으로 들어가는 샛길이 있고 비탈길을 올라 넘게 되는 이곳은 너삼밭재라는 곳입니다. 너삼은 ‘고삼’의 또 다른 이름이며 고개 주위에 고삼이 많이 서식해 '너삼밭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네요.

코스의 절정은 금강소나무 군락지에서 펼쳐집니다.

깊은 산속에 있는 오지였기에 일제강점기의 엄청난 소나무 수탈에도 훼손되지 않아 소광리는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남아 있는 곳이랍니다.

 

 

금강소나무 군락지 입구에는 안도현 시인의 ‘울진 금강송을 노래함’이라는 시비가 있고 수령이 530년 된 ‘오백년 소나무’가 있습니다. 500여 년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온 숲의 진짜 주인이지요.

 

 

처음 출발지에 도착하면 옛 보부상들이 쉬어가던 십이령주막이 있는데 과거 십이령길 중간에 있던 옛 주막을 그대로 복원해 트래킹을 마친 이들의 지친 몸과 마음의 후식처가 되고 있지요.

'금강소나무숲길'은 울창한 대자연의 깊은 맛과 경관, 그리고 사연 깊은 문화·역사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체험하지 못하고 온 제1구간과 제2구간은 다음을 예약하며 ‘금강소나무 숲길’ 안내센터는 ☎ 054-781-7118/782-6118, 남부 지방 산림청 울진 국유림 관리소 ☎ 054-780-3940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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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주말 나들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이는 요즘,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자연 속에서 흙과 마음껏 뛰놀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제28회 이천도자기축제가 8월 29일 설봉공원에서 ‘창조, 설레임의 순간’을 주제로 화려하게 개막해 다녀왔습니다. 축제 시작 첫 주말 잠정 추산 약 5만 7천여 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입장하는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예년 평균 대비 40%이상 증가한 수치로써 당초 예상을 크게 넘어서는 것입니다. 축제 관계자들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크게 반색하는 분위기였다고 하는데요.

 

 

이천 도자기 축제는 원래 4월에 열리기로 했던 것이었는데요. 세월호 사태로 연기되었다가 이번에 24일간 펼쳐졌지요. 예년에 비해 검소하지만 알차고 내실 있는 행사로 치뤘구요.

올해 이천도자기축제 프로그램은 무엇보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흙과 도자기를 통한 교감과 소통의 타겟별 맞춤 여행 코스가 특징이었습니다. 

흙을 통한 힐링을 경험하는 “도자 흙체험”, 나만의 도자기를 소장할 수 있는 “핸드페인팅”, 가족의 사랑을 담은 “도판가훈 만들기”, 오직 하나뿐인 나만의 보석을 만드는 “세라믹 쥬얼리” 등 도자기축제장을 찾는 방문객들이 추억거리를 만들어 갈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도자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의미 깊습니다. 올해 축제는 “전통장작가마 소성 시연”와 “라쿠소성 시연”,아이들을 위한 신나는 도자기 교육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먼저 아이들과 함께 라면 교육과 체험 중심의 코스인데요. 이천 토박이이자 청자장인인 해주 선생과 함께 하는 도자순례교실은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행사장 곳곳을 누비며 이천의 전설, 도자기의 유래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걸쭉한 입담의 해주 선생과 함께 만들어 보는 도자기는 살아있는 도자기의 전설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의 백미였다고 합니다. 또 물레체험과 핸드페인팅 또한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체험이었습니다.

 

 

올해 축제장에서 놓치면 안되는 것이 도자간판과 큰항아리 액션페인팅 등과 주변 명소의 사기막골 도예촌전“등 새로운 시도들이 관람객들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전통 도자기의 맥을 이어 한국 도자기의 문명을 널리 알림과 동시에 예술성과 실용성이 담긴 이천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열리고 있는 이천도자기 축제는 제 1회 한국관광 주간을 기념하여 입장료와 주차료가 모두 폐지돼 무료로 축젤 즐길 수가 있었어요.

이번에 처음 가본 이천도자기 축제였지만 살림하는 주부라 그런지 저는 맘에 드는 그릇들을 사가지고 와 매우 흡족한 하루 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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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억 아시아인의 최대 축제인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보러온 관광객들을 위해 경인아라뱃길의 갑문을 활짝 연 경인아라뱃길을 유람선을 타고 가보았습니다.

이번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는 아라뱃길을 이용해 성화봉송에도 참여했다고 하는데요. 인천아시안게임 대기간 내내 경인아라뱃길은 주요 관광지를 경유하는 무료 관광셔틀이 다녀 아시안게임을 즐길 수 있게 했습니다.

경인 아라뱃길은 바다, 들판, 협곡 등 다채로운 경관을 즐길 수 있게 뱃길 18㎞로 만들어졌는데요. 무엇보다도 아라뱃길 관광코스로 수경8경을 안볼 수가 없었습니다. 친수공간 수경8경은 문화와 전통이 함께하는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꾸몄는데요.

 

 

수경 1경은 세계를 향한 요트뱃길인 서해를 필두로 수경2경 아라빛섬은 아라김포터미널에 있는데요. 이곳에는 해경경비함 한강 2호로 함안공원으로 선박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있구요. 아라빛섬 주변 지역은 정서진으로 특히 이곳은 서해의 아름다운 노을이 있는, 해넘이 관광장소로 유명한데요.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는 서해는 한폭의 그림과 같았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탄성이 절로 나올만큼 사방팔방이 그림엽서 한장 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대는 수상분수, 체육시설을 갖춘 검암공원 등 생동감이 넘실대는 수경3경인 시천가람터는 아시안 게임 주경기장으로 가는 곳이어서 이곳에서 내려 무료셔틀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아라뱃길의 필수 코스 수경4경인 아라폭포와 아라마루였는데요. 아라뱃길 중 가장 높은 곳인 계양산 협곡구간에 위치한 원형 모양의 전망대입니다. 유리로 되어있는 바닥 아래로 아라 계곡이 내려다 보이며, 하늘을 걷는 듯한 짜릿하고 아찔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야간에는 난간과 바닥의 반짝이는 조명이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한다네요. 아라폭포는 국내최재의 인공폭포 6개 포포로 30분 간격으로 폭포수가 나온다고 하는데요. 마침 우리 유라섬이 시간이 맞지않아 그 광경을 보질 못해 서운했었습니다. 

여의도서 출발해서 제일 흥미로운 코스는 갑문체험이었습니다.

김포 갑문을 통해 경인 아라뱃길로 들어서게 되는데요. 수위 차이 때문에 한강과 국내 최초의 운하인 경인 아라뱃길 사이에 설치된 육중한 갑문이 열리고, 그 안으로 배가 들어서게 되는것인데요. 처음 보는 광경에 관광객들은 모두 구경할려고 한강물과 바닷물이 바뀌는 지점에서 수위를 맞추는 생소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경5경은 한국 전통의 모습을 그대로 간작한 수향원과 수경6경으로 자연학습장의 기능을 갖춘 두리생태공원인 수경6경, 수경7경인 아라김포여객터미널은 서해섬으로 가는 여객선과 아라뱃길을 운항하는 유람선을 탈 수 있습니다.

한강에서 연안부두까지 이어지는 아라뱃길을 따라 가본 이색적인 구경은 정말 외국 그 어딜 가도 만나볼 수 없는 우리만의 정경과 풍경이 있어 가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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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여행이라고는 일본의 오사카, 쿄도가 다인데, 꽃 할배들의 유럽 여행을 동경하다 겁도 없이 10여 년간 모아온 카드 마일리지로 파리 행 비행기 표를 예약을 했다. 여행 기간도 free ticket이 가능한 비수기 4월로... 그래도 여행을 다녀 온지 6개월 정도가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는 즐거운 여행이였다.

 

▲ 설레임을 안고 파리로 출발

 

여행의 첫 목적지는 파리. 파리하고 생각하면, 에펠탑, 몽마르뜨 언덕, 루브르 박물관, 세느강 유람선이지만 패키지 상품으로 오면 할 수 있는 여행 코스라서 과감히 통과 하고, 오르세 박물관, 샹젤리제 거리, 마레 지구, 세느강 따라 걷기와 꽃 할배에 나왔던 스트라스브르크를 가기로 했다.  

첫날 파리에 도착해서는 예약한 한인 민박을 찾아갔다. 요즘은 자유 여행을 하고 자신의 경험을 블러그를 통해서 많이 남기기 때문에 후기 등을 보고서, 한국에서 예약을 하고, 위치도 알아 두었다. 파리에 가서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다 보니, 버스 노선의 경우는 초행자가 잘 알 수 있도록 설명이 정확하지 않아서, 복잡하기는 해도 지하철이 편리했다.(파리 지하철은 엘리베이터가 거의 없다.) 그리고 지하철의 요금의 경우는 파리의 존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파리 시내 관광을 할 거라면 1존안에서 숙소를 정해야지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파리 북역 민박도 많지만, 가능하면 치안 관계상 피하는 것이 좋다.)

 

스트라스브르크 기차역과 그 주변 모습

 

파리에 볼 것이 무지 많지만, 언제 또 올까 싶어서 둘째 날 TGV를 타고 건물과 수로가 아름다운 스트라스브르크로 떠났다. 전날 비행기를 타고 온 여독 때문에 기차 밖 경치는 잠시 보고, 그새 숙면으로 빠졌다.

왠지 스트라스브르크하면 옛 정취로 가득해서 역까지도 멋진 옛날 건물일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도착해 보니 너무도 현대적인 건물의 역사라서 좀 당황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사진은 열심히 찍고, 도시 탐험에 나섰다.

스트라스브르크를 큰 도시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관광지도만 달랑 들고 가서 보니,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다. 맛 집이라는 식당을 찾는데도 같은 길을 세 네 번을 돌아서 겨우 찾을 수가 있었다. 그래도 맛 집에서 소세지와 돼지 정강이로 만든 샤우어크라우트, 달팽이 요리를 먹고 기운을 차린 다음 스트라스브르크의 수로를 따라 쁘띠 프랑스를 산책하고 대성당도 보고, 도시의 곳곳을 열차 시간에 맞추어서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어디든 처음 가면 낯설고 길 찾기가 힘들어도, 헤매기도 하면서 발로 걷다 보면, 나름에 정취도 있고, 당시에 힘들였던 경험이 지나고 나면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게 되는 듯 하다. 아마 이런 점 때문에 자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스트라스브르키의 쁘띠 프랑스 지도와 수로와 아름다운 건물들

 

셋째 날에는 오르세 박물관으로. 여행을 오기 전에 파리 박물관을 이용 할 수 있는 티켓을 살까 말까를 정말 정말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안사기를 잘 했다. 아이들이 박물관을 너무 힘들어 하기도 하고, 어른인 나도 솔직히 쉽지가 않았다.

특히나 루브르에는 한국어 안내 리코더 헤드셋 렌탈이 가능한데, 오르세는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건성건성 보다가 박물관 내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만 맛있게 먹고, 피리 부는 소년만 보고 나왔다. 이 날 여행 때는 버스 정류소를 정확히 몰라서 엉뚱한 곳에 내려서 다시 지하철 타고, 걷고 좀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나폴레옹 3세 다리부터 시떼 섬까지 걸을 수 있었다.

 

 

시떼 섬까지 걸으면 오르세, 루브르 박물관, 오베리스크와 세느강의 여러 다리 등을 지나면서 파리 시의 아름다운 건물 들을 구경 할 수 있었다. 지치고 힘들면 거리에 나와 있는 노점상의 물건들도 구경도 하고, 날씨도 너무 맑아서 걷기에는 더 없이 좋았다.

파리의 연인들도 서울 남산의 연인들처럼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갈망을 세느강 다리에 자물쇠를 달아 놓는 것을 보니 동서양의 감정 표현이 그리 다르지는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시에서 세느강의 끝 자락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 역시 평일인데도, 성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아이들과 줄서는 거는 포기하고 사진만 찰깍~ 대신 맛난 아이스크림만 냠냠...먹고 기념품을 사러 다녔다. 시떼섬 주변은 파리 중심보다는 물가가 싼 편이라서 쇼핑하기에도 좋았다.

 

세느강의 나폴레옹 3세 다리와 파리 노트르담 성당

 

넷째, 다섯째 날에는 마레 지구와 샹드리제 거리를 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쇼핑도 하고. 샹들리제 거리는 파리의 대표 쇼핑가인 만큼 화려하고, 볼거리가 정말 많았다. 아이들도 자동차 샵에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미니 카도 사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지만, 카메라를 안 들고 나온 관계로 이때의 사진이 없어서 아쉽기도 하다.

파리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에서 온 신랑과 파리 북역에서 만나서 르와르 지역으로 이동. 출발하기 전에 여행과 지도라는 사이트에서 자동차 렌트를 신청해 파리 북역 Hertz에서 인수를 받았다. 파리 북역 지역은 파리에서도 치안이 안 좋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곳에서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를 탈 수 있고, 자동차 렌탈의 경우는 빌리고, 반납하는 장소가 같아야 경제적이기 때문에 북역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 몽셸 미셸을 꼭 가보고 싶었지만, 파리와의 이동거리가 너무 멀고 주변 여행지와의 연계가 좀 어려워서 고성과 와인으로도 유명한 르와르 지역으로 정하고 숙소로는 ibis buget 호텔로 예약을 했다.

르와르에서는 블루아성과 쉬농소성을 보고, 앙부와즈성 주변에서는 카페에서 여유를 즐겼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고성을 와서 보니, 아름답고 멋있기도 하고 그 당시 건축이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쉬농소 성은 강위에 지어진 요새 같은 성으로 작지만 여성이 성주로 있던 성이라서 그런지 볼 것도 아기자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고, 주변의 정원과 숲은 사람의 손길과 자연스러움이 잘 조화되어 있어서,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그런 고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블루아성에서 본 주변과 쉬농소 성의 모습

 

르와르 지역은 화이트와 로즈 와인이 유명한 지역이라 시골길을 가듯 가다보면 길가에 와인너리들이 많이 보였다. 지형적으로 한 쪽은 르와르 강이, 다른 쪽은 돌산으로. 자연적인 동굴들이 많아서 와인을 보관하기에 천해의 조건과 포도가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을 갖춘 지역이라고 한다

 

▲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하 와인 저장고와 넓은 포도밭

 

르와르에서 여행을 마치고 다시 파리 북역으로. 북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으로 가서 여행을 끝냈다. 

이번 여행의 소감이라면, 자유 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생겨서 얼마든지 여행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과, 여행을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공부와 인터넷이 발달해도 메뉴 정도는 보고 주문할 수 있을 언어를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유 여행 괜찮을까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충분한 준비를 하고 간다면, 결코 잊지 못할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 특히나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힘들고, 즐거운 만큼 아이도 따라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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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여름에, 일본에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군에 간 아들을 두고 가려니 맘에 걸렸으나 아들은 나라를 지키라 하고 남편과 딸과 함께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따지고 보니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생활 할 수 있는 것이, 보이진 않지만 전방, 후방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우리의 아들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감사한 마음입니다. 실은, 일본에는 여행이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친척의 결혼식이 있어 참석하기 위해 간 것입니다. 3박 4일의 일정으로 갔기 때문에 온천을 갈 수 있었고요.  

친척의 결혼식은 도쿄에서 차로 2시간 가는 야외에서 이루어 졌는데 바다가 보이는 멋진 장소였습니다. 기독교식으로 진행 되었는데 어떤 형식 보다는 자유로운, 캐쥬얼 한 결혼식이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참석 한 모든 분들과 실내의 파티장에서 뒤풀이가 있었습니다. 신부와 신랑이 이벤트로 온갖 형태의 춤을 추며 하객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낮 3시에 시작한 결혼식이 밤 9시 까지 진행 되었는데 즐거운, 부담이 없는 재미있었던 결혼식이었습니다.

 

 

결혼식이 있은 다음날, 오다이바의 온천 ‘오오에도’에 갔습니다. 일본의 택시비는 어쩌면 그리도 비싼지...... 그래서 일까요? 기사분들이 상당히 친절하셨습니다. 대체적으로 일본사람들은 친절했던 것 같습니다.

이 온천은 도쿄시내에 있는 온천이라 그런지 관광객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한국인들도 많았습니다. 한국의 온천과도 그리 색다른 것은 아니지만 일본만의 특색은 분명 있었습니다. 우선 온천의 건물이 일본식 전통의 집으로 되어 있어 멋져 보입니다.

 

 

원래, 온천장의 이름 ‘오오에도’는 에도시대의 거리를 재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실내의 음식점들이 애도시대의 선술집이 있는 거리처럼 지어 졌다고 해서 존칭어의 ‘오’ 를 써서 ‘오오에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친척분이 알려 주셨습니다.

에도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지금의 도쿄)를 본거지로 통치한 막부시대를 말합니다. 1603년부터 1867년 까지 265년간 막부시대는 계속 되었다지요. 오다이바의 오오에도 온천은 에도시대의 먹거리촌과 온천문화를 재현한 테마파크식 온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입구에 들어서니 화려한 실내가 인상적이네요. 일본의 유명한 에니메이션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에서 본 듯한 실내의 모습과 흡사하네요. 이 온천이 모델은 아니었겠지요? 유카타라는 옷을 입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게다가 골라 입는 재미가 있었죠. 저는 분홍무늬로 딸은 청색무늬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천장에서 진행되는 일은 한국의 찜질방, 온천과 비슷합니다. 먹을 때나 선물을 살 때에도 팔찌의 바코드를 이용해서 나갈 때 계산이 됩니다. 신발장 이용, 옷장 이용도 한국과 똑같습니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실내가 나옵니다. 이곳이 바로 에도시대의 거리를 재연 했다는 일본식 식당가입니다. 엄청 넓은데 가지가지 골라먹는 재미도 있습니다.

우리는 소바를 시켰는데 일본식 모빌국수의 소스는 한국식 보다 많이 짰습니다. 그래도 맛있었습니다. 한국 음식점도 있더라구요. 물냉면, 비빔냉면, 떡만두국등도 있어 반가웠습니다. 이곳에는 한국인이 삼분의 일은 되는 것 같습니다.

식당가 뿐만이 아니라 게임코너, 기념품코너에 푸드코트가 마련되어 있답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수면실이 준비되어 있어서 온천으로 노곤해진 몸을 풀고 잠을 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족탕이라고 쓴 등을 따라 복도로 나가면 야외가 나오는데 그곳은 시냇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것 같이 물길을 만들어 따듯한 온천물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할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조약돌이 밑에 깔려 지압의 효과를 주는데 걷기가 아파서 힘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실내 온천으로 들어가니 한국의 온천탕과 똑같더라구요. 단지 옥외탕에 나가면 크게 만들어진 한명이나 두명이 들어갈 수 있는 둥근 나무욕탕이 있어 일본을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지하 1400m로부터 퍼 올린 온천수의 물은 미끌거리고 좋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의 테마가 있는 ‘오오에도’ 온천, 도쿄에 여행을 가신다면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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