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로' - 사당역 서울메트로 삼거리에서 서초동 뱅뱅사러리를 잇는 도로를 효령로라고 하죠?

그런데 이 도로의 이름을 왜 효령로라고 지었을까요? 바로 이 도로에 효령대군의 사당인 청권사가 있기 때문에 효령대군의 이름을 따서 효령로라고 지은 것입니다.  
(효령대군은 조선 3대 태종의 둘째아들이자, 동생인 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한 인물이지요. )


 효령로 사당방면에서 방배역을 지날때마다 왼편에 보이는
이 곳의 정체가 궁금하진 않
 으셨나요?

 기와지붕이 올려진 외삼문과 둘러쳐진 담장, 뭔가 특별한 공간인 듯 싶죠?
 이곳이 바로 효령대군의 사당과 묘소가 있는 청권사 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청권사는 사당의 이름이지요. 그 사당 이름을 효령대군 후손들의 종친
 회의 명칭으로, 그의
위덕과 사상을 계승 선양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려는 사단법인의
 명칭으로도 사용하는 것이랍니다. 

 청권사는 1972년 8월 3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사단법인 청권사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청권사의 정문인 외삼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오른편 단 위로 보이는 저곳이 바로사당입니다.
사당은 조상의 신주 (위패) 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지요. 이 곳 사당은 특별한 때가 아니면 문을 잠궈둡니다.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신성한 공간이다보니 대부분의 사당들은 이와같이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답니다.

저기 보이는 내산문 안으로 들어가면 사당 본건물인 청권사가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우진각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 바로 효령대군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신 곳입
니다.

1736년(영조 12) 효령대군의 내외손이 사당 건립에 대한 소청장을 올리자 왕명으로 경기감영에서 짓도록 합니다.  이듬해 완성되어 청권사라 이름하였답니다. 

청권이란『논어』권 18 '미자편 微子篇'에서 연유된 것으로 “신중청폐중권(身中淸廢中權)” 의 준말입니다. 고대 중국 주나라 태왕은 셋째아들  계력(季歷)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합니다.

이에 첫째아들 태백(太伯)과 둘째 우중(虞仲, 仲雄)은 아버지의 뜻을 헤아려 멀리 도망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하여 계력이 왕위를 이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계력의 아들 창(昌)과 손자인 발(發)이 중국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나라를 이룩했다는 주나라 문왕과 무왕입니다.

훗날 공자는 태백을 일컬어 '지덕'이라고 평합니다. 왕위를 양보했으니 이보다 더한 덕이 없단 얘기지요. 또한, 우중은 숨어살면서도 처신이 청도(淸道)에 맞았고, 스스로 폐한 것이 권도(權道)에 맞았다하여 ‘신중청폐권도’라 하였답니다. 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한 양녕과 효령의 행적이 이와 같다 하여, 맏형인 양녕대군의 사당이름을 지덕으로,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사당이름은 청권이라 지은 것입니다. 1789년 정조임금이 직접 이름을 지어 사당의 현판을 내려주었다고 합니다.


사당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작은 비각이 보입니다. 
효령대군 묘소에 세워져있던 묘 비석이 마모되어 보호차원에서 이 곳 비각안에 옮겨 둔 것입니다.
비각 옆으로 효령대군과 그 부인의 묘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제단을 마주보고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효령대군의 묘이고 오른쪽이 예성 부부인 해주 정씨의 묘입니다. 묘 앞에는 중앙에 석등이 있고  좌우로 문인석이 2구씩 서 있습니다.
또한, 언덕 아래로는 조선초기 유구인 대군의 제7·8대 후손의 묘가 있어, 조선 초기 대군 묘의 제도와 규모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라고 합니다.

 

 

 






양지바른 언덕 위에 올라서니 주변 풍광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옵니다. 쭉 뻗은 도로과 앞쪽으로 보이는 우면산까지 시원스런 전망입니다.
마치 효령대군이 문인석을 벗삼아 이곳에 서서 지긋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대군은 지난 조선의 역사를 건너, 대한민국의 오늘을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언덕 아래로 보이는 파란 지붕 건물은 효령대군 기념관입니다. 입구 쪽 파란 지붕 건물이지요.
이곳에는 효령대군이 남긴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어 대군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청권사를 돌아보기 앞서 기념관부터 들러 보는 것이 좋겠네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기념관에 들어가면 먼저 2층 영상실부터 들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500년 만의 해우, 조선의 왕자 효령대군을 만나다'라는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는데, 대군의 삶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3층에 있는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효령대군의 존영입니다. 경기도 문화재 81호인 관악산 연주암 표령각에 봉안되어 있는 효령대군 존영의 모사본입니다.  효령대군 (孝寧大君, 1398~1486)은 태종과 원경황후 민씨의둘째 아들로, 이름은 보(補), 자는 선숙(善叔), 시호는 정효(靖孝)입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했으며 독서를 즐겼다고합니다. 또한, 활쏘기를 잘해 태종이 사냥을 가면 늘 함께 다녔다고 하네요. 그리고 령대군은 불교에 독실하여 승도(僧徒)를 모아 경을 강론했으며 1464년(세조 10) 원각사(圓覺寺)를 지을 때에는 조성도감제조(造成都監提調)가 되어 역사 (役事)를 감독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주암, 무위사 등 여러 사찰을 중창하는 데에도 참여하고, 태안사 바라 등 여러 불교 문화재 조성에도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문장에도 뛰어나 '원각경(圓覺經)' 등을 우리말로 번역하였습니다. 

또한, 이곳 전시관에는 세종대왕과의 형제간의 우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희우정이야기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풀뿌리 민주주의 기본이 되는'향헌56조'를 제정하는 등, 왕실의 큰 어른으로 했던 여러 일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 문중 대대로 내려오는 족보와 문서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으며, 덕혜옹주의 친필 글씨도 전시되어 있답니다.
 

  

관람 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탬프 찍기 체험도 해볼 수 있도록 이렇게 준비되어 있답니다.  역사 공부도 할 겸, 아이들과 함께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죠? 

외삼문을 앞 연못 뒤로는 고즈넉한 고택의 풍모를 자랑하는 모련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련재는 재사를 준비하는데 사용되는 건물인 재실입니다.




모련재 오른쪽에는 돌 거북등 위에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효령대군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 (왼쪽 사진)입니다. 묘 올라가는 길 옆에 있는 옛 신도비(오른쪽 사진)를 새로 꾸며 만든 것입니다.

청권사 경내에는 봄을 맞아 매화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서리풀 공원이 시작되는 이곳 청권사 경내는 봄이 되면 꽃향기 가득한 도심 속의 고요한 쉼터가 된답니다.  햇살 따스한 날, 산책 삼아 들러보는 것도 좋겠지요? 
 

                                     

청권사는 방배역 4번 출구로 나와 뒤쪽 서울고 방면으로 돌아 올라가다 보면 바로 왼편에 자리잡고 있답니다. 효령로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양녕대군의 사당인 지덕사 (至德祠)도 함께 찾아보면 좋겠네요.  효령로도 확인할 겸.... 지덕사와 청권사는 나란히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 11·12호로 지정돼 있어 사후에도 여전히 형제애를 과시하고 있답니다.

 



   문화 향기 가득한 서초에서 이곳저곳 보고 듣고 느끼며, 소소한 즐거움에 빠져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도서관이나 박물관 등 여러 문화시설을 찾아 다니는 것을 즐긴답니다.
  
  
   서초구여행기자단: 이현정   

   블로그 주소 : http://blog.naver.com/sosoi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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