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은 서울서 가까워서 그런지 지나칠 때마다 언젠가는 가겠지 하고 그러다가 이제서야 가게 됐습니다.

사적 제56호인 행주산성엔 의외로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됐지만 한때는 치열한 전쟁의 격전지였다는 곳이라는 것은 입구초입에 서있는 권율장군 동상이 말해 주었습니다.

권율 장군의 사당이 모셔져 있는 '충장사

‘쪽으로는 울창한 나무들이 있어 호젓하게 걸어다니기 좋았습니다. 1970년에 건립된 충장사는 매년 음력 2월이면 권율 도원수의 무훈을 기리는 행주대첩제 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곳은 고즈녁한 길로 둘이 손잡고 걷기 좋은 오솔길이라 그런지 유난히 연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은 한강을 뒤로 하고 서울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 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돌로 쌓은 성이 아닌 토성으로 성벽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행주산성 둘레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 듯 따라갔습니다.

행주산성은 삼국시대 때 신라 문무왕 시절에 쌓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역사 깊은 산성입니다.

우리에게는 권율장군과 행주대첩의 격전지로 잘 알려진 행주산성인데요.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대파한 싸움으로 유명하구요.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손에 꼽힐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싸움이 벌어진 행주산성인데요.

 

 

 

 

행주대첩이 벌어졌던 임진왜란 때에는 목책으로 임시로 방어선을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음력 2월, 관군, 의병, 승병, 부녀자로 구성된 2천300여 명이 권율 장군의 지휘 아래 10배 넘는 왜적 3만여 명을 물리친 행주대첩의 역사적인 무대였습니다.

행주대첩은 당시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서, 석전으로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고, 때문에 ‘행주치마’라는 명칭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산성의 위치가 가파르진 않지만 주변보다 높은 곳이라 방어에 유리한 위치라는 것을 알겠더라구요. 제일 맨 꼭대기 기념탑에 사방팔방으로 탁 트여 경관이 얼마나 좋은지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특히 주변 한강와 고양시쪽이 한눈에 보이여 당시 전쟁을 하였을 시 방어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전쟁의 흔적보다는 주변의 좋은 공원으로 자리 잡고 있어 신선한 공기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됐습니다. 특히 가을 단풍이 지는 울창한 나무들이 뿜어내며 걷는 길은 정상에 오르면 전망이 눈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매년 새해의 첫날이 되면 이곳에서 해맞이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고 하는데요. 이제 한달 남은 2014년이 지나고 새해 2015년에는 행주산성에서 해맞이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Trackback 0 And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