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계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마지막 선비, 김창숙 기념관을 다녀왔습니다 |
오늘은 “성인의 글을 읽고도 성인이 시대를 구하려 한 뜻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거짓 선비다.” 라는 생각을 전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한 김창숙 선생님을 만나려 김창숙 기념관에 가 보았습니다.
서초구 소방서 옆에 위치한 심산기념문화센터 1층에 김창숙 선생님의 일생을 보여주는 전시실이 있었습니다~
김창숙 선생님은 을사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문을 올리면서 구국운동을 시작하셨다고 하는데요. 본격적으로는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3·1운동을 목격한 이후, 곽종석,김복한 등과 함께 한국 독립을 청원한 파리장서를 작성하여 상하이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1919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었고, 1926년 12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부의장에 선출 되었습니다.
그 후, 일제에 체포되어 1927년 12월에 14년형을 선고받고, 1934년 9월까지 7년 3개월 동안 옥중투쟁을 벌이셨다고 합니다. 일제의 고문으로 끝내 앉은뱅이가 되셨다니 정말 한탄스럽습니다. 다행히 광복이 되고, 그 후 김창숙 선생님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중심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는 이승만 정부의 권위주의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이 외에도 김창숙 선생님은 유학 정신을 건학 이념으로 하는 성균관 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학장, 초대 총장을 지내셨다고 합니다. 1962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공로훈장을 수여 받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김창숙 선생님을 추모하고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남아 있다고 하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창숙 선생님의 기념관을 다녀와서 다시 한 번 20세기 초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날씨 좋은 봄날에 야외로의 소풍도 좋지만, 김창숙 선생님의 기념관에 가서 그 시대의 슬픔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반 25살 학생입니다. 대학생과 사회인의 기로에서 더욱 참신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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