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은 신라시대 학자로 빠르게 당나라 관직에 올라 17년 간 당나라에 머물렀습니다. 29세로 신라에 돌아오자 헌강왕에 의해 시독 겸 한림학사에 임명되었습니다. 국내에 들어와서도 문명을 떨쳐, 귀국한 다음해에 왕명으로 <대숭복사비문> 등의 명문을 남겼고, 당나라에서 지은 저작들을 정리해 국왕에게 진헌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신라사회는 이미 붕괴를 목전에 둔 상태로, 지방 호족세력들이 대두하면서 중앙정부는 재정이 몹시 궁핍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봉기가 일어나 전국적 내란에 진입하게 됩니다.
또한, 10여 년간 신라의 정치세계에서 목격한 부패와 반란 등을 토대로 시무책 10여 조라는 정치 개혁안을 진성여왕에게 올리게 됩니다. 이를 통해 최치원은 최고의 관등인 아찬에 올랐으나 진골귀족들에게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 후 최치원은 신라왕실에 대한 실망으로 은거하게 됩니다.
이러한 최치원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가지고 찾아간 ‘최치원-풍류탄생’전은, 최치원의 정치적 배경에 국한되지 않고, 최치원의 문장과 예술세계에 집중하는 면모가 강했습니다.
전시회의 기획 목적은 ‘인문정신의 재발견’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전시회의 두 갈래의 방향성이 파생되는데, 첫째는 최치원이 남긴 사료나 유물, 전국 각지에서 최치원을 모신 영당, 암벽 글씨 탁본 등을 전시함으로써 최치원의 족적을 전당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후대 예술가들이 최치원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해 가고 있는 가를 보여줍니다. 여기에서는 미술가, 서예가, 무용가 등이 저마다 독특한 관점에서 최치원을 재해석합니다. 관람자들은 최치원과 풍류사상에 대한 폭넓고 유연한 해석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작품들이 새롭고 신기했습니다.
‘최치원-풍류탄생’ 역시 현대 우리사회의 트랜드라 할 수 있는 융·복합의 장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정신이 오늘날의 예술과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이 전시회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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